실제 등반기 1일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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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9. 14 |와이나포토시 등반 2일 차 (정상 공략)
어떻게 잠이 들었던 것 같은데 깨고 보니 아직 8시 반이다.
또 뒤척이다 잠에서 깨고 또 뒤척이다 잠에서 깼다.
계속 잠에서 깨는 와중에 공황이 온 것처럼 숨이 잘 안 쉬어지고 눈을 떠도 아무것도 안 보이는 답답함에 멘탈이 너무 힘들었다.
중간에는 결국 침낭에서 나와 옷을 한 겹 벗고 심호흡을 하며 견뎠다.
그렇게 견디다 12시가 되어, 양말을 다시 신고 준비를 시작했다.
내가 부스럭 거리며 준비를 시작하자 잠에서 깨어있던 애들이 몇 있었는지 그 친구들도 준비를 시작하고 그러다 보니 모두 일어났다.
화장실을 가는데 또다시 숨이 엄청 가쁘고 어지러워서 토가 나올 거 같았다.
방으로 돌아와서도 어지러움을 겨우 참으면서 약을 하나 더 먹고 등반 장비를 착용했다.
처음 신는 플라스틱 부츠에 하네스. 생각보다도 더더 걷기 힘들어서 놀랐다.
이즈마일에게 검사를 받으러 가니 하네스도 더 꽉 조이고 신발도 꽉꽉 조여준다.
어지러움을 참으면서 코카차를 마시고 있으니 코스타리카 아저씨도 준비가 다 되어가나 보다.
1시쯤 이즈마일이 재촉해 밖으로 나간다. 나가서 걸으니 플라스틱 부츠 더더욱 불편했다.

돌산 한 고개를 넘는데 엄청 불편하고 숨이 가빠온다.
다행히 고개를 넘어 크램폰 착용을 위해 멈춘다.
이즈마일이 착용을 다 시켜주고 피켈도 꺼내라고 하고 허리에 줄을 묶었다.
이즈마일-나-코스타리카 아저씨순서이다.
그리고는 시작되는 산행은.. 진짜 진짜 힘들었다.
보통의 어떤 산행들과 달리 그냥 처음부터 너무 힘들게 느껴졌다.
입으로 숨을 쉬면 폐가 아플 거라는 걸 알면서도 코로는 숨이 다 안 채워져서 입으로 숨을 쉬게 됐다.
앞에서 이즈마일의 줄은 계속 팽팽해져 가고 뒤의 코스타리카 아저씬 바짝 따라와서 겨우겨우 한 걸음을 뗀다.
라파즈에서부터 8시간마다 고산병 약을 먹었음에도 속이 점점 안 좋아져서 결국 토를 했다.
먹은 게 없어서 별게 나오진 않았지만 출발 전에 먹은 고산병 약이 그대로 튀어나왔다.
지금도 이렇게 속이 안 좋은데 올라갈 수 있을까? 걱정 때문에 패닉이 올 것 같았다.
그래도 등반은 계속 됐다.
그렇게 얼마쯤 올라 가진 첫 휴식. 나는 죽을 거 같은데 두 사람은 멀쩡해 보인다.
코스타리카 아저씨는 이미 6천 미터 대 등산 경험이 몇 번 있다며 나를 걱정해 주었다.

잠깐 쉬고 다시 등반, 점점 더 경사가 심해져서 옆으로 게걸음을 하며 올라가야 했다.
올라가다 헛구역질도 몇 번 하면서 5500m에 다다랐다.
저 멀리 라파즈의 야경이 보이고 여기가 트여있는 지대라 라파즈로 가는 광이 잡히는 건지 갑자기 데이터가 됐다.
그리고 다시 올라갈 준비를 하며 나는 걱정이 돼서 이즈마일에게 물었다.
나는 지금 더 올라가고 싶은데 정상까지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만약 내가 중간에 내려가게 되면 코스타리카 아저씨가 정상에 갈 방법이 있느냐고.
이즈마일은 2인 중 한 명이 따로 내려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며, 고산병 때문이면 아마 올라갈수록 더 힘들어질 거라고 했다.
그래도 갈 수 있는 데까지는 가보자고 했고, 나도 올라가 볼 수 있는 데까지 가보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다시 출발하고 십 분도 되지 않아 정체 중인 한 팀을 발견했다.
거기는 한 친구가 당장 내려가고 싶다고 얘기를 하는 상황이었다.
가이드들끼리 얘기하더니 나에게 너 지금 내려가도 괜찮냐고 물어봤다.
지금 내려가긴 너무 아쉬워서 지금은 내려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나 때문에 계속 정체가 되고 있었기 때문에 코스타리카 아저씨에게 내가 같이 올라가도 되느냐고 하니
아저씨는 당연히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그쪽 팀도 내려가고 싶어 하는 친구 때문에 계속 정체가 되고 있는 상황이었는지,
가이드가 일단은 팀을 바꾸는 건 괜찮냐고 물어왔다.
직감적으로 팀을 바꾸면 정상에 올라가지 못할 거 같단 생각이 들었지만 계속 나 때문에 정체되는 상황이 미안해서 고민이 됐다.

결국 나는 팀을 바꾸게 되었다. 이름하여 중도포기 예정팀이랄까..
이즈마일과 줄을 풀고 코스타리카 아저씨랑 포옹하며 헤어지고
새로운 가이드와 줄을 묶으며 페이스를 늦춰 조금씩 올라가 보자고 했다.
페이스를 늦추자 숨쉬기 편해져서 머리가 안 아파지기 시작했다.
속은 여전히 안 좋았지만 그래도 조를 바꾸기 전보다는 훨씬 괜찮았다.
아까 토를 한 게 고산도 고산이지만 오버페이스를 한 것도 큰 이유였던 거 같다.
나는 점점 컨디션이 괜찮아져서 잘 올라가고, 따라오던 친구는 아까 전의 내 상태랑 비슷하게 끌려 올라오고 있었다.
5600미터에 다다르자 새 가이드가 내 컨디션을 물어왔다.
나는 좋다고 했고, 내 뒤에 있던 친구는 내려가고 싶다고 했다.
가이드의 설득 끝에 조금만 더 가보기로 하고 다시 산행을 시작했다.
하지만 한걸음 한걸음마다 내 뒤의 친구의 컨디션이 점점 더 안 좋아지는 게 느껴졌다.
속도가 늦춰지다 못해 거의 제자리걸음을 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결국 57000m에 채 다다르지 못했을 때 우리는 다시 멈춰 서야 했다.
가이드가 우선 나에게 괜찮냐고 물어서 지금 페이스면 더 올라갈 수 있을 거 같다고 했다.
하지만 내 뒤에 있던 친구가 자기는 못 간다고 여기까지가 한계라고 했다.
가이드에게 내가 내려가지 않으면 이 친구는 어떻게 되냐고 물어보니 내가 포기할 때까지 같이 올라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단다.
그리고 더 올라가다가 정말 진행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판단되면 그땐 나의 선택권이 없어지고 무조건 하산을 해야 된다고 했다.
내 뒤에 있던 친구는 나에게 사과를 하며 자기는 정말 더 이상 못 올라가겠다고 하고,
가이드는 내려가도 괜찮겠냐고 묻는 상황이 됐다.
사실상 달리 선택지가 없는 상황이 된 거였다.
결국 나도 하산하기로 결정하고 5700m를 눈앞에 두고 뒤돌아 하산을 시작했다.
차라리 내가 한계를 느끼고 뒤돌아섰다면 미안했을지 언정 그다지 아쉽지 않았을 텐데
체력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뒤돌아섰다는 게 너무 아쉬웠다.
걸어 내려오는 길은 그리 길지 않았다.
터벅터벅 내려오다 보니 어느새 아까 라파즈의 야경을 본 곳도 지나고, 초승달이 아름답게 뜬 큰 구덩이도 지나고,
아까는 너무나 괴로웠던 언덕도 지난다.
하이캠프에 돌아오니 5시도 안 된 시간.
뭔가 허탈한 마음에 잠시 앉아있다 침대로 들어가니 고산병이 심하게 온 친구는 이미 잘 준비 중이다.
가이드도 이제 쉬라며 인사해 주고 나가고 나도 애써 잠을 청했다.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이미 해가 떠있다.
그래도 해랑 일직선상에 있는 경험은 인상적이다.
구름이 발 밑에 깔려있고 해는 나를 마주 본다.
5250m, 하이 캠프의 일출은 정상의 일출을 맛보지 못한 나에게도 그나마의 위로를 준다.
잠깐 눈을 붙여서 체력이 회복된 건지 아까는 느끼지 못했던 아쉬움이 미친 듯이 밀려왔다.
괜한 미안함에 조를 바꾸지 말걸, 후회가 들었다.
그런 후회와 아쉬움을 느끼며 설산을 바라보고 있는데 누군가 내려오고 있다.
정상 부근 5900m에서 고산 증세가 심해져서 내려온 여자애다.
그래도 그 경우엔 가이드가 융통성을 발휘해 같은 조였던 남자애를 다른 그룹에 엮어 보내고 여자애랑 둘이 하산을 했단다.
그쯤 내려오는 다른 캠프의 친구들도 아마 5800 후반~5900m에서 포기하고 내려온 친구들인 거 같았다.
날이 추워서 숙소에 다시 돌아가서 짐 정리를 시작했다.
7시 반, 8시가 넘어가자 정상 등반을 성공한 친구들이 내려온다.
한 팀이 돌아올 때마다 박수를 쳐주며 축하를 나눴다.
우리가 올라간 날 12인의 등반 도전자 중 정상을 가지 못한 사람은 나를 포함한 우리 조 2명과
5900m에서 하산한 친구 셋 뿐이었다.
아쉬움은 점점 짙어진다.
(사실 한국에 돌아온 지금도 아쉬움은 가시지 않는다. 그때 조를 바꾸지 않았다면 올라갈 수 있었을까?)
조금 쉬다 보니 9시 20분쯤 간단한 수프를 먹고 내려가자고 한다.
닭수프는 역시나 맛이 없었다. 아니, 맛의 문제라기 보단 고산 증세가 제대로 온 거 같긴 하다.

짐을 챙기고 10시에 하산 시작, 가이드 친구들이 "메이데이메이데이 ~ 라파즈 라파즈 라파즈~" 하면서 재촉을 한다.
라파즈~ 우유니~ 루레나배케~ (갈 사람 호객하는 목소리로) 하면서 하산이 시작된다.
내려가는 길은 미끄러워 넘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모두 헬멧을 착용하고 내려간다.
올라올 때랑은 다른 길로 내려가는데 아마 올라갈 때는 눈 길이 편하니 어제는 다른 길로 오른 듯하다.
넘어지면 죽지는 않겠지만 최소 한국에 귀국은 확정일듯한 절벽을 엉덩이로 미끄러지듯이 내려갔다.
헬멧을 쓰라한 이유가 납득이 갔다.
그래도 가이드들이 등반인들 사이사이 위치하여 위험한 구간에서 가방을 잡아주거나 손을 잡아주며 하산을 도와준다.
큰 돌 절벽을 내려오고부터는 크게 위험한 구간은 없다.
올라올 때 셰르파를 쓴 덕에 모든 장비의 무게를 느끼며 산행하는 게 처음이었는데
올라올 때 셰르파를 쓰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백번은 했다.
대여한 가방이 단단하지 않아서 모든 무게가 어깨로 와서 통증이 시작됐다.
그래도 하산만 하면 끝날 일이라 큰 문제는 아니었다.

하산은 11시쯤 끝이 났다.
내 가방을 찾아서 내 물건들을 옮겨 담고 빌린 장비는 꺼내서 이즈마일에게 확인을 받는다.
옷, 장비, 가방, 헤드렌턴 등 빌린 게 다 맞는지 확인하고 알아서들 정리를 해준다.
보아하니 침낭은 로우 캠프에서 햇빛에 말리는 것으로 세탁을 대신하는 것 같다.
내려와서야 보였는데 가이드들이 각자 하이캠프에서 쓴 쓰레기봉투를 하나씩 둘러메고 내려와 로우캠프에 가져다 놓는다.
이즈마일이 다가와 이제 괜찮냐고 물어왔다.
이제 괜찮다고 하니 다음에 고산에 적응을 많이 한 뒤에 다시 보자고 하며 모자 고쳐 쓰고 선글라스까지 쓰며 셀카 한 장을 같이 찍었다.
슬쩍 50 볼을 주니 "아미가, 고마워" 한다. (하이 캠프에서는 셰프 팁을 30 볼 냈다.)
듣자 하니 중간 장비 대여비, 캠프 사용비, 차량 이용비, 투어사 중개비 등
돈이 많이 떼여서 정작 가이드들은 한번 올라갔다오는데 200볼 정도를 받는다고 한다.
이제는 라파즈로 돌아갈 시간,
그런데 신기했던 건 어제 같이 차를 타고 올라왔던 2박 3일 투어의 친구들 중 3명이나 하산을 결정했다는 거였다.
4800m의 로우캠프에서도 고산 증세가 심해서 더 올라가기엔 무리라고 판단했단다.
나도 몰골이 만신창이였지만 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남미여행을 하면서 알게 된 하나의 신비로운 것은 "고산"이었다.
라파즈에 돌아오니 허탈함은 더더욱 커졌다.
5700m도 결코 쉬운 길이 아니지만, 6천 미터라는 고도가 이제 더더 먼 꿈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매번 성공하고 즐거울 수 없는 인생처럼,
이 실패의 경험이 나의 삶과 여행을 단단하게 해주리라는 믿음으로 와이나포토시를 기록한다.
'1. South America > H. 볼리비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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